[칼럼] ‘아플 때도 일한다’ 프리젠티즘의 개념과 해결 방법
2022/02/232020년 기준 대한민국 직장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927시간으로, OECD 주요국 대비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는 점은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 스스로 한민족의 가장 큰 장점을 ‘부지런함’으로 여기며, ‘여가 보다 일에 집중’한다는 조사 결과를 참고할 때, 한국이 매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로 집계된다는 점은 얼핏 언행일치의 미덕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아파도 쉬지 않고 출근한다는 현실은 사회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며, 때로는 타의 모범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아픔을 참고 일할 정도로 성실한 직장인에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속사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근로자가 건강상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업무를 지속하는 현상은 프리젠티즘(Presenteeism)으로 정의된다.
근육통, 두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의 정신적 문제 또한 프리젠티즘 관련 증상에 속한다. 많은 연구를 통해 고용 불안정성, 회사의 분위기, 업무에 대한 부담감, 대체인력의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아픔을 참고 출근하는 프리젠티즘을 일으키며, 프리젠티즘이 개인의 건강문제를 악화시키고 결근을 의미하는 업센티즘(Absenteeism)보다 더 큰 생산성 감소를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리젠티즘으로 인한 성과 저하가 만연한 상황에서도 표면상으로 직원들이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이 관찰되기 때문에 조직은 프리젠티즘의 실체와 심각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책상과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은 직장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루틴이며,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행동은 열정과 도전정신을 평가하는 지표로 인식되기 때문에 표면적 풍경만으로 이면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상황에서도 프리젠티즘은 메일과 메시지에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온·오프라인 접속 기록을 남기는 형태로 디지털화되고 있다. 이는 프리젠티즘이 단순히 업무 장소의 변화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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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프리젠티즘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프지 않게 일하면서 높은 성과를 거두는 비법은 어디에 있는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분명 이로운 행동이며 성취를 이루는 데 필수적인 재료이므로 ‘열심히 일하지 말자’를 정답으로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또한 여러 추진과제 중 하나일 뿐 그 자체로 완벽한 해답이 될 수 없다. 근로자가 일한 시간을 관리·감독의 대상으로 삼고,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사무실에 앉아 있는 행동을 솔선수범으로 바라보는 뿌리 깊은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프리젠티즘은 얼마든지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행동 양식인 조직문화의 변화이다. 일의 목표를 더 많이, 더 오래 일하기가 아닌 일을 통한 자아실현에 두고 역량의 성장과 주도성 발휘에 중점을 둔다면 생산성 향상과 근로시간 감소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과일 것이다. 이는 프리젠티즘 해결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조직 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거론되는 내용으로, 조직문화를 바꾸는 출발점이 구성원 간 소통에 있다는 점은 이제 더는 강조할 필요가 없는 기본 상식일 것이다. 때때로 열정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단어로 둔갑한 적은 없는지, 도전정신의 미덕에 매몰된 상태는 아닌지, 앞으로 어떤 가치를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지 우리 조직을 돌아보는 솔직한 대화를 나눌 시점이다.